신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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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으로 만든 샌들로 시작

신발의 역사는 수 천년 전으로 올라간다. BC2천년 이집트 벽화를 보면 이미 가죽 파피루스로 만든 샌들을 신고 있었다. 물론 신발의 착용은 상류층에만 허용되었으며 하층민은 맨발이었다.



구두의 시작은 인디언의 모카신

구두의 시초는 아메리카인디언이 사용했던 ‘모카신’으로 본다.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이 구두는 한 장의 가죽으로 발을 감싼 후에 발등 부분 가죽에 구멍을 뚫고 끈으로 묶는 방식이다.



하이힐은 르네상스 시대 ‘쵸핀’에서 시작

힐이 높은 하이힐은 고대부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으나 패션으로 시작은 르네상스 시대에 귀부인이 신던 ‘쵸핀’이라는 구두가 출발점이다. 15세기경 터키 지역에서 만들어진 ‘쵸핀’은 굽이 20~75cm라는 어마어마한 굽길이라를 자랑하던 신발로 실용성은 없는 신발이었다. 당연히 노동일을 하는 평민이 신는 신발일 리가 없으며, 고위층 여성이 신던 신발이다. 쵸핀을 신고 제 발로 걷기가 어려우므로 손을 잡아주는 수행원이 보조해주어야 하므로, 쵸핀을 신는 것은 부를 상징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BC 3500년 전부터 귀족들이 자신의 권을 돋보이게 하려고 키를 키우는 하이힐을 신었다. 동양권인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하이힐형태의 돌신발을 신었고, 중국 대표적인 신발인 전족도 굽이 높은 하이힐형태다. 한국에서 발견된 삼국시대의 나막신도 굽이 높은 하이힐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사보타주는 프랑스 노동자 신발 ‘사보’에서 유래

중세 프랑스 농민과 근로자가 주로 신던 ‘사보(sabot)’라는 나막신이 있다. 이들이 태업이나 시위를 할 때 사보로 작물을 짓밟거나 사보를 기계에 넣어서 공장의 기계 동작을 멈추게 했기 때문에 ‘사보타주(sabotage)’가 악성태업을 뜻하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서양구두는 19세기말 들어와

서양구두의 도입은 1880년(고종 17)에 일본 미국 등지로 나갔던 외교관들이 구두를 사신고 돌아오면서부터다. 갑오경장 이후 양복이 공인되고 고종이 구두를 신으면서 상류귀족사회에서 구두를 신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자로는 서양신발이라 하여 ‘양화’라고 불렀으나 우리말로는 ‘구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양화점을 이규익(李圭益)이 개점하였으나, 고객이 거의 없어 몇 년 후 폐정했다.

조선시대 최대 신발전은 동대문시장 근처였으며 현재도 동대문시장의 구두도매시장은 동양 최대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구두의 어원은 동아시아 고대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

‘구두’라는 낱말의 표기는 대한매일신보 1907년 7월 14일자에 [洋服에 短杖집고 麥藁子슉여쓰고 구두바람 번젹버젹 가난 거시 開明한 兩班인가보더고]라는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미 1907년이면 구두문화가 일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두의 어원에 대해서는 정확한 어원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구쯔의 어원을 일본어 어원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한국어 구두와 동어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은 헤이안 시대에도 신발을 신지 않았기 때문에 신발은 고구려나 백제 등 한국으로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어원도 그때 전래되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일본어 구쯔는 조선어 구두(kuit)에서 유래되어 구두-구쯔로 변화를 겪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어 구두는 동아시아에 퍼졌던 신발을 뜻하는 고대어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시아 낱말을 보면 몽골어로 신발이 쿠툴(kutul), 구탈(gutal)로 한국어 구두와 발음이 거의 같다. 한국이 고려 때 원나라의 많은 말을 받아들였음을 볼 때 구두라는 말도 받아들인 용어이거나, 고대부터 한국에서 쓰던 용어일 수 있다. 동아시아인 말레이반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타이완 등의 원주민 등이 신발이라는 낱말로 쿠리트(kulit)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동아시아에는 고대부터 kutu 비슷한 발음이 신발의 의미로 쓰였음을 추측하게 한다.



한국에서는 ‘신’이라고 부르던 의복

‘신’을 신라시대에는 ‘선(洗)’이라고 표기한 걸로 보아 ‘신’이라는 명칭은 삼국시대부터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신은 형태에 따라 ‘화(靴)’와 ‘이(履)’로 나눌 수 있다. ‘화’는 북방에서 유래한 신으로 장화처럼 목이 긴 신을 말한다. 겨울철 방한에 좋은 신이다. ‘이’는 목이 짧은 신으로 혜(鞋)·비(扉)·극(?)·구(?)·석(?)·갹답(?踏) 등을 포괄하는 말이다.

가장 오래된 신은 초마제(草麻製) 신으로 짚신, 미투리 등이 포함된다. 가죽으로 만드는 피혁제(皮革製)로는 목화, 흑피화, 흑피혜, 당혜, 운혜 등이 포함된다. 실이나 천으로 만드는 포백제(布帛製)로는 당혜 운혜 태사혜 등이 포함된다. 당혜 운혜의 바탕은 가죽이나 겉을 포백으로 대었기 때문에 포백제 신발로 분류한다. 놋쇠로 만든 유제(鍮製)로는 ‘유혜’ 또는 ‘놋신’이라는 신발이 있는데 비올 때 상류층에서 신던 신발이다. 종이로 만든 지제(紙製)는 일반적으로 천한 사람들이 신은 신발이었다. 나무로 만드는 목제(木製)로는 ‘나막신’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때는 목화, 운혜, 당혜, 미투리, 짚신 등 다양하게 신어

조선시대 신을 보면 가죽으로 만든 신은 혜(鞋)라고 불렀으며, 나무로 만든 극(?), 삼실로 만든 신은 구(?)라고 불렀다.

태사문이라는 무늬를 붙인 가죽신을 태사혜라고 불렀으며 남자들이 주로 신었다. 바닥을 담을 깔아 따뜻하게 만든 운혜, 흑피혜는 여성용이다. 구름 문양을 넣은 운혜의 경우 ‘꽃신’ ‘비단신’으로 부를 정도로 고급신이었는데 가격이 비싼 신발이라 일반인이 신기를 어려운 신발이었다. 운혜보다 더 고급인 당혜도 돈이 많은 양갓집 부녀자들이나 신는 신이었다.

비오는날에 신는 신은 징을 박은 징신인데 마른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진날에 신는 신이라 하여 진신이라고도 부른다. 징신은 가격이 비싼 신이라 부잣집 부녀자들이나 신었던 신발이다.

일반 백성은 짚을 이용해 만든 짚신이나 삼실을 이용해 만든 미투리, 나무로 만든 나막신을 주로 신었다.



고무신으로 시작된 서양신발의 대중화


일반 백성이 비싼 서양구두를 신기를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서 서양식 신발은 고무신으로 대중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무신은 1908년부터 일본에서 수입되었다. 1919년에 평양에 고무신 공장이 설립되었고 1920년에는 이병두 최규봉에 의해 외코신의 고무신으로 개량되었다. 그러나 1939년에는 고무가 군수품으로 조달되면서 고무신 공장이 폐업되어 고무신이 매우 귀해지는 일이 벌어진다.

조선말부터 보급된 구두는 1910년에 검정 에나멜구두가 등장했고, 1912년에는 인천을 중심으로 혁신화(革新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고무신이 폐업된 1939년 이후부터는 왕골구두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전 이후 구두, 케미화, 운동화, 고무신 등 다양한 신발이 대중화되었고 한복보다 양장이 일상화되면서 구두의 사용이 증가했다.

이후 1986년에 나이키가 한국에 진출하면서부터 발보호용 신발은 단순 의류에서 브랜드, 패션, 스포츠, 전문화 등으로 다양한 신발문화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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