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썸남 박경준의 오페라 산책 :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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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썸남 박경준의 오페라 산책

G. Verdi(베르디)의 Un ballo in maschera (가면무도회)



"E voi del par diletti a me! Porgete:
A me s'aspetta; io deggio
Su' miei figli vegliar, perche sia pago .
Ogni voto, se giusto.
Bello il poter non e, che de' soggetti
Le lagrime non terge, e ad incorrotta .
Gloria non mira."

"당신도 나에게 똑같이 소중하오!
그것도 주시오.
나는 백성들의 소망이 정당한 것이라면
모두 들어 줄 것 이오.
백성들의 눈물을 멈추게 하지 않고
정의가 바르게 실현되지 않는다면
권력은 아무 소용이 없소."

구스타브 3세(Gustav III)역의 리카르도의 국민들을 위한 대사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 같다!!!


이 오페라는 1957년 가을, 나폴리의 산 카를로 가극장으로 부터 그 해 시즌에 상연할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받은 베르디는 대본 작가인 솜마(Antonio Somma 1809~1865)와 원작자인 프랑스의 극

Daniel-Francois-Esprit Auber작곡의
Gustav III, ou le Bal masque)
title_page_of_the_libretto,_Paris
1833년 2월 27일
작가 스크리브(Eugene Scrive 1791~1861) 가 쓴 희곡으로 메르카단테에 의해 작곡된 적도 있는 [구스타브3세, 또는 가면 무도회[(Gustav III, ou le Bal masque)를 새로 작곡하기로 하였다.


Daniel_FE_Auber
작곡가
Daniel-Francois-Esprit Auber (1782?1871)
Gustave III, ou Le bal masque (Gustavus III, or The Masked Ball) is an opera historique or grand opera in five acts by Daniel Auber, with a libretto by Eugene Scribe.
이것은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3세의 암살사건을 소재로 한 것으로, 구스타프3세(1771~1792 재위)가 정치적 대립 때문에 요한 야코브 앙카르스토롬 백작에게 권총으로 암살 당한 실화를 기초로 해서 앙카르스트롬의 처와 국왕과의 숨겨진 사랑을 이 사건에 허구성과 함께 얽히게 하여 희곡화시킨 것이다.

※구스타브 3세(Gustav III, 1746년 1월 24일 ~ 1792년 3월 29일)

프랑스의 극작가 위젠느 스크리베(Eugene Scribe)의 작품을 베르디가 오페라 하기로 한 “구스타보 3세”는 스웨덴 왕국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의 제2대 국왕(재위: 1771년 2월 12일 ~ 1792년 3월 29일)이다. 러시아 제국과 덴마크와 싸워 승리하여 유럽에서 명성을 높였다. 또한 한스 폰 페르센을 신하로, 프랑스와 우호 관계를 다졌다.구스타브 3세의 시대는 스웨덴의 중흥의 시대이며, 또한 문화면에서 “로코코 시대”라고도 불렸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순정만화에 나오는 페르잔 백작! 바로 그가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애인이었던 스웨덴의 백작이다.
베르디 오페라 [가면 무대회]는 그 배경이 스웨덴의 왕가이며 당시 왕의 이름은 구스타프 3세( 재임기간 1771~1792)다. 그의 곁에는 충실한 신하가 함께 했으니 그가 바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연인인 한스 악셀 폰 페르잔 백작(1755~1810)이다. 그는 앙투아네트가 왕비가 되기 전 황태자비 시절 프랑스의 가면무도회에서 만나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다. 프랑스와 우호적 관계를 바라던 구스타프 3세 국익을 위한 일로 이를 반겼다한다. 오페라는 1792년 구스타프 3세 스웨덴 왕 구스타보 3세에 대항하는 몇몇 귀족들이 왕을 시해할 것을 계획하고 왕족인 잔 자코모 안카르스트로엠이 권총으로 왕을 부상 입힌 사건이다. 총상을 당한 왕은 후계 구도를 마련하고 걸국 13일 후에 죽는다. 구스타프 3세는 스웨덴의 귀족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농민과 부르즈아의 편을 들며 왕당파의 지지에 힘입어 무혈혁명으로 시민계급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왕의 자리를 지켰다. 오페라와 무도회를 즐기던 국왕은 젊은 여인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다가 자신의 비서인 앙카르스토롬백작의 부인인 아멜리아에게 연정을 갖게 된다. 암살사건의 인물로 지목된 바 있는 앙카르스토롬백작이 실제 국왕을 죽였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국왕은 왕비와의 불화가 잦았다고 하는데 동성애적인 성향도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오페라 극장 암살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다룬 대본은 1833년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같은 이름으로 오페르(Auber)에 의해 상연되었다. 그리고 V.가부시의 “클레멘자 디 발로이스(Clemenza di Valois 1841년”)나 메르카단테의 “일 레젠테”(il reggente1843년) 등에 의해서 이태리어 대본으로 작곡되기도 했다.

오페라 가면무도회 공연 중 구스타프 3세 시해장면 중 서울 시립오페라단 Photo by 강진수작가


이 스크리브(Eugene Scrive)의 작품은 솜마(Antonio Somma)에 의해서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어졌고, 베르디는 1857년 가을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2개월 반이라는 빠른 속도로 완성시켰다. 그러나 솜마가 쓴 대본은 최고 권력자의 암살이라는 소재는 민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지만 당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독립운동이 격렬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나폴리 검열당국
을 벗어나기 위해 제목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1857년 9월19일, 자신이 전속 작곡가로 속해 있던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의 서기관이면 저널리스트였던 빈셴초 토렐리(작곡가 토렐리가 아님)에게 쓴 편지에 망설임과 갈등이 담겨있었다. “나는 지금 한편의 프랑스 희곡’구스타보 3세’의 대본으로 약 20여년 정도 작곡을 하고 있다. 그것은 웅장하고 거대하며 그리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폴리 검열 당국은 국왕 시해로 막을 내린 고스타보 3세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을 그대로 무대에 올릴 수 없다는 규정을 통보했다.

리카르도역을 위한 작자붏명의 무대복


나폴리 검열 당국이 대본가 솜마에게 보낸 14가지 규제문에는 사건의 시기나 국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지위도 모두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산 카를로 극장 측이 전속 대본가인 도미니크 볼로녜제에 의해 2~3번의 제목이 바뀌면서 베르디와 검열당국은 대치생태가 된다. 이때 파리에서 이탈리아 독립투사 올시니에 의한 나폴레옹3세 암살 미수사건이나 두에 시칠리아(Due sicilie)의 왕인 페르디난도 2세가 군대 열병식 도중에 부상을 입은 사건 일어나 검열당국의 태도가 더 한 층 강경해졌기 때문에 결국 나폴리에서의 상연은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의 삽화 오페라 제목이 “구스타보” 였을때 1859년 상연에서의 3막 2장

그리하여 이듬해인 1859년 2월17일, 이 오페라의 초연을 강경하게 원했던 로마의 아폴로 극장에서 겨우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법황청의 검열을 받고 있었던 로마에서도 이 작품의 상연을 그대로 허가해주지 않아 솜마의 제안으로 무대를 스웨덴에서 17세기 폴란드로 바꿨다가 다시 14세기 피렌체로 바꾸고 제목도 바꿨지만 매번 검열에서 불합격했다. '가면무도회'는 결국 무대를 영국의 식민지인 17세기의 미국 보스턴으로 옮기고, 주인공르 왕 구스타프 3세대신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로 대치하는 선에서 검열을 통과한다.
베르디의 오페라가 로마에서 초연된 것은 이것이 네 번째였으나 로마 시민들은 열광적인 갈채로 이 초연을 받아 들였고, 당시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중심 인물이었던 사르데니아 왕이 빗토리오 엠마누넬레 2세를 찬양하여 “Vittorio Emanuele Re D’Italia” 의 머리 문자인 베르디를 애국의 상징으로 삼아 “Viva Verdi”를 외치면서 로마 시가지를 누비고 다녔다.



※이렇게 탄생한 '가면무도회'는 웅장한 무대스케일로 유명하지만 세계 유명 테너들이 가장
매력적인 작품으로 꼽는 '테너의 오페라'라는 점으로도 유명하다.
프리마돈나가 극의 중심인 일반 오페라와 달리 테너가 무대를 주도하는 작품인 데다 주인공 리카르도가 보기 드물게 쾌활하면서도 사려 깊고, 여성의 명예를 지킬 줄 아는 품위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1875년10월19일 스칼라 광고문. 독일 황제의 찬사의 글이 들어있다.

이 베르드의 위대한 오페라는
원작의 “위젠느 스크리베”의 원제목 ”구스타보 3세“에서 ”가면복장의 복수”(Una vendetta in domino)를 거쳐 ”아델리아 델리 아디마리”(Adelia degli Adimari)로 3번의 교체를 통해 최종 “가면무도회”로 결정되었다.


오페라 가면무도회 마지막 장면 중 라벨라 오페라단 Photo by 강희갑작가

9월호에 계속..

글 박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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