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의 결혼 K.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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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로의 결혼 K.492

작곡 : W.A.Mozart

Wolfgang Amadeus Mozart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원작
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원작은 보마르셰 [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1732년 1월 24일 ~ 1799년 5월 18일) 는 프랑스의 극작가이다.
파리에서 출생하여, 궁정 감독관·궁정악사·작가·출판업자 등 여러 직업을 거치는 동안 복잡한 생애를 보냈다. 이론면에서 디드로의 계승자인 그는 오늘날에 와서는, 스페인 시민 계급을 주제로 당시의 특권 계급을 풍자한 2대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과 더불어 3부작을 이루는 《사악한 어머니》(1792)가 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원작은 보마르셰 [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의 [피가로의 결혼]이다.
이 연극은 “1784년 극장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초연되었다. 《세빌랴의 이발사》(1775)의 속편으로 등장인물도 같다. 갈등희극(葛藤喜劇)에 정치풍자와 심리묘사를 가미한 시민극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사회의 불균형에서 생긴 강렬한 시추에이션 없이는…훌륭하고 참다운 희극성을 연극에서 얻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 전에는 이발사였지만 지금은 알마비바 백작의 하인이 된 피가로와 백작의 시녀(侍女) 수잔나와의 결혼이 주제이다. 백작과 부인(로지나) 사이는 애정이 식어 막장 드라마로 전개, 발전되어지며 각 장면마다 서로를 기망하고 서로 속고 속이는 상황 속에 사실은 계급의식에 대한 도전의식과 계몽의식이 숨어있다.. 백작은 시녀 수잔나를 짝사랑하여 밀회를 요구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수잔나와 피가로는 백작부인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갖가지 술책을 써서, 백작의 바람기를 물리치고 혼내주며 피가로와 수잔나는 결국 부부가 된다는 줄거리이다.“
모차르트나 보마르셰는 계몽주의시대에 활동한 예술가들이다.
피가로의 결혼을 감상하려면 우선 계몽주의가 무엇인지 배경은 어떤지 그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아야한다.
계몽주의는 이전의 전통적 봉건주의의 타파에 시동을 건 정신운동이다.

※계몽주의(啓蒙主義) 계몽주의는 18세기 하반기에 프랑스를 기점으로 유럽 전역에 유행했던 문화적, 철학적, 문학적, 지적 사조로 이것이 흥했던 시대를 계몽시대라고 한다. 계몽주의는 이성을 통하여 비합리적인 전통적 관습(전통적 봉건주의)과 사회체제를 타파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려는 운동이고 이것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기초가 되었다. 대표적인 철학자로 바뤼흐 스피노자, 존 로크, 피에르 벨, 아이작 뉴턴 등이 있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이성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칸트 철학에서, 선천적 인식 능력인 이론 이성과 선천적 의지 능력인 실천 이성을 통틀어 이르는 말. 즉, 이성으로 진위여부와 선악을 구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동물과 구별 짓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게 갖고 있는 이성능력을 '양식' 또는 '자연의 빛'으로 표현했듯이 이들은 이성을 자연의 빛이라 하여 계몽주의를 프랑스는 Lumieres 영국은 Enlightment, , 이태리는 Illuminismo라고 명명하였다.
계몽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진보적 엘리트라고 생각했고, 종교적 정치적 박해에 맞서 투쟁했다.

즉 계몽주의는 결국 자유, 평등사회의 근간이 되었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1680년경부터 시작되어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발전되었고 그 동안에 영국의 산업혁명이 이끌어 프랑스시민혁명을 거쳐 근대사회의 밑거름이 되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1786년에 초연되었으므로 이러한 계몽주의 사상이 무르익어 갈 때이고 귀족들은 그러한 운동에 대하여 무척 예민해 있던 상황이다

뉴턴주의 지식을 몽매(어둠)을 깨우치는 빛(계몽)으로 비유했다.



※모차르트가 12세에 작곡한 최초의 오페라 ‘바스티앙과 비스티엔’(1768)이 당시 계몽주의자 루소의 작품을 대본으로 삼았고, 초기 작품 ‘이도메네오’는 그리스 신화에 근거한 오페라로, 계몽군주에 대한 모차르트의 기대를 엿볼 수 있다. 노예인 여주인공 이리아와 이도메네오왕 부자의 사랑을 줄거리로 한 이 오페라는, 결국 이들이 온갖 고난을 거친 후 이상적인 왕과 왕비가 되는 극적 스토리를 통해 당시 봉건사회에 대한 비판과 계몽군주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였다.


바스티앙과 비스티엔

이도메네오

그리고 작품의 내용에서 보이는 성적인 긴장감은 ‘정치적 긴장’과 연결되어 우리들에게 청량음료 같은 시원함을 선사한다. 보마르셰 [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의 원작은 1781년에 이미 완성했으나 프랑스 지배 계급의 정치적 부패와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기에 지배계급의 귀족들은 지극히 위험한 내용의 연극이었으므로 상연금지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작품배경이 에스파냐(스페인)의 세비야 (세빌리야) 이야기지만, 파리의 귀족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비꼬는 것임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연극으로 파리에서 초연될 무렵 당시 루이 16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이 작품의 상연을 전면 금지했었습니다. “참을 수 없이 끔찍한 작품이군. 절대로 상연하면 안 돼!” 국왕 뿐 만 아니라 모든 귀족들이 치를 떨며 분노했지요.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신분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정치적인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마르셰의 이 문학적 저항은 몇 년 후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현실화됩니다.?
보마르셰는 작품 탈고 후 3년간 프랑스 관으로부터 상연 허가가 나지 않았으나 드디어
1784년 파리에서 첫 공연이 이뤄졌다.
여기에서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공연금지가 되었고 시민 대혁명의 불씨가 되었을까?


보마르셰의 원작 연극 제 5막에서 나오는 백작을 겨냥한 피가로의 독백은 신분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시민계급의 분노를 대변하고 있어 이 연극이 초연되었을 때는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귀족과 시민간의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제5막 제3장의 피가로의 기다란 독백(獨白)은 프랑스 대혁명 직전의 당시의 구제도(舊制度)에 대한 비판으로서 유명하다.


“백작, 당신은 절대로 수잔나를 얻을 수 없어! 귀족의 부와 신분, 그리고 높은 지위와 품격...
이런 것들을 다 가졌다고 우쭐대지곤 하지. 하지만 당신이 가진 모든 특권을 얻기 위해 당신이 한 일은 대체 뭐가 있지? 오로지 단 하나 세상에 태어나는 수고뿐이잖아!”
※이 대사를 모차르트와 다 폰테는 해학 적으로 군대에 가야하는 사실에 낙담한 케루비노를 피가로가 "Non piu andrai farfallone amoroso"를 부르며 위로하는 1막의 피가로의 아리아로 다시 태어난다. 오페라 내용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보도록 하자.
이 작품은 루소와 볼테르의 저술과 더불어 프랑스 혁명을 준비한 작품의 하나로 인정되었으며, 구제도의 왕권 ·귀족 ·성직(聖職) 등 특수계급에 대한 민중의 분개와 공격을 대변하는 명작이다. 초연 이래 거듭 대호평을 거두었고 오늘날에도 프랑스를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 자주 상연된다.



대본
로렌초 다 폰테
이탈리아의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1749~1838)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763년 세례를 받고 후에 신부가 되었지만 젊은 혈기에서 나온 종교적 방종과 자유로운 사고 때문에 1779년 베네치아에서 쫓겨났다. 빈에 자리를 잡고 황제 요제프 2세의 궁정시인이 된 그는 이때 수많은 음악가에게 오페라 대본을 써주어 성공을 거두었다. 모차르트와 사귀면서 작가로서 황금기에 들어선 것도 17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였다.


19세기 피가로의 결혼 1막 한장면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1786)·〈돈 조반니 Don Giovanni〉(1787)·〈코시 판 투테 Cosi fan tutte〉(1790) 등 3편의 명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의 장점은 남에게서 빌려온 주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비극의 요소와 희극의 요소를 한데 엮어낼 수 있는 능력이었다. 특히 돈 후안 전설의 각색은 문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요제프 2세가 죽자 다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잠시 런던에서 지낸 (1792~
1805) 뒤 미국으로 이주해 말년에는 뉴욕에 정착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이탈리아어와 문학을 가르치고 이탈리아 문화사업을 장려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회고록 Memorie〉(4권, 1823~27)은 작가를 운명과 적들의 희생자로 그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나, 19세기초의 미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피가로의 결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세 편의 대본은 모두 다 폰테의 작품으로, 다폰테 3부작 이라고 부르며, 음악과 대본에서 모두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세 오페라의 소제는 모두 성을 다루고 있는데 피가로의 결혼은 오늘날에도 이슈가 되고있는 미투(Me,Too) 캠페인과 직장 성희롱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오페라의 배경인 알마비바 백작의 저택을 직장으로 바꿔 생각해본다면 직장 성희롱 센터나 고용노동부에 고발해야하는 사건이다,
젊은 시절에 칸트, 루소, 볼테르 등의 영향을 받아 뚜렷한 계몽주의성향을 지녔던 다 폰테는 세 작품 모두 유럽 귀족들의 무분별한 성도덕을 신랄하게 공격, 비판 하였다.
다 폰테가 모차르트와의 작업에서 처음 선택한 것이 프랑스 작가 피에르 드 보마르셰의 3부작 연극 <세빌리아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또 하나의 위선자” 혹은 “사악한 어머니”>중
“피가로의 결혼”은 제2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 폰테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보마르셰의 원작 연극 제 5막에서 나오는 피가로의 발언과 왕실과 귀족들은 놀라 경기를 일으킬 내용을 빼거나 축소시켰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은 상연이 금지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대본작가 다 폰테는 황제가 금한 이 프랑스 희곡 <피가로의 결혼>에 곡을 붙여서 궁정으로 달려가 황제에게 설명한다.

코지 판 투테


“이곡은 코믹오페라입니다. 원작의 정치적 요소도 다 뺐어요. 여느 연극처럼 사랑에 관한
곡일 뿐입니다. 라고 말하고 하나 하나 설명해나간다.
중창은 구조화된 복합적 사회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백작부부의 대립으로 시작되는 2중창이 수잔나가 더해져 3중창이 되고 안토니오가 등장해서 누군가 발코니에서 뛰어내렸다고 할 때 피가로가 자기가 뛰어 내렸다고 하면서 4중창이 되고, 마르첼리나, 바질리오, 바르톨로가 합세해서 7중창으로 Allegro(빠르게) 7인의 생각이 서로 얽히는 대 혼란의 앙상블로 끝난다고 설명한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이 20여분이나 계속되니 백작을 중심으로 피가로파와 백작파의 3:3 대치상태로 긴장감이 극으로 치닫는다고 설명한다.
즉, 편을 나눈다면 피가로-수잔나-백작부인-케루비노가 한편이고,
백작-마르첼리나-바르톨로-바질리오 등이 한편이 되어서 집단으로 대립각을 보입니다.

돈 조반니



※예를 들어 2중창은 계급이 다른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유효하다. 계급으로 구분되지 않는 평등한 인간관계를 묘사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앞에서 본 ‘편지의 이중창’에서 백작부인과 시녀는 완전한 평등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러한 평등과 자유의 환희는 마지막 장면인 피가로의 결혼식에서 울려 퍼지는 ‘축하, 평화, 용서’의 합창으로 대단원을 이룬다.


피가로의 결혼 2막

우여곡절 끝에 1786년 5월 1일 모차르트 자신의 지휘로 빈 궁정 극장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가 가장 정열적으로 작곡에 몰두할 30세에 쓰여 졌으며, 그러나 빈에서의 상연은 겨우 수회로 중단된다.
그러나 이전의 오페라의 소재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신화와 영웅중심에서 대중적인 소재로 바뀌면서 오페라부파로서 근대 오페라의 근간이 되었다
다 폰테나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익살스러움과 수잔나의 생동감 있는 진행, 또한 해학이 있고,
아름다운 선율의 아리아와 탄탄한 앙상블이 포진하는 이 오페라가 사회에 끼칠 파문을 이미 각오했으며 그 자신감이 성공 또한 예상 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부폐한 시대상을 희극적인 요소로 풀어 내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3년 전에 초연된 최초의 현대 오페라였다.
이는 등장인물들의 복잡하고 애매한 감정과 인간적인 고뇌가 바로 우리 시대의 것임을 뜻하며
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 작품을 프랑스혁명의 신호탄이라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피가로의 결혼 예식장면


이 오페라만의 특이한 점은 정원사 안토니오 빼고 거의 모든 배역이 아리아를 부릅니다.
다만 4막에 나오는 마르첼리나와 돈 바질리오의 아리아는 생략하곤 합니다.
여성동맹가 같은 마르첼리나 아리아는 숫염소와 암염소를 빗대어
“여성들이여, 모두 일어나 무지한 남자들에게 부당하게 당하는 모든 여성을 서로 도와줍시다”...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나 항상 잔인하게 우리를 박해하네”..
남성에 대항하여 여성의 단결을 호소하는 이 시대 페미니즘 구호 같은 이 노래는 상연 시 자주 생략된다.
또한, 바질리오의 아리아는 반 귀족적 내용으로 “높은 분과 싸우면 맹수 앞에서 악취를 풍겨 도망치는 힘없는 동물처럼, 나는 악취를 풍기는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 쓰고 그 위험을 피해야해.....라고 노래하는데 이 곡도 자주 생략된다.

케루비노의 아리아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봉건주의의 상징으로 연출한 작품.
이 작품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셀러스는 뉴욕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레이건 시대에 완공된 트럼프 타워는 새로운 봉건주의의
상징이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프랑스혁명의 초석이 되었고, 봉건시대에서의 평등과
민주주의사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1988.7.15. The New York Times



※1988년 7월15일에 미국 연출가 Peter Sellars(피터 샐러스)가 뉴욕 맨하탄 트럼프타워
52층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으로 재구성한 <피가로의 결혼>이 Pepsico Summerfare(펩시코 섬머페어)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알마비바백작은 트럼프 타워의 팬트하우스에 사는 부호로, 피가로는 집사로 수잔나는 가정부로 나온다.케루비노의 하키 장비부터 Don Curzio의 휴대폰까지...백작부인과 케루비노의 섹슈얼리티를 높이는 것이 눈에 띱니다.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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