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아프레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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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아프레걸 - 국립극장



극본: 고연옥
연출: 김광보
작·편곡: 나실인

​출연: 이소연(박남옥), 김미진(이민자), 김준수(이택균), 김지숙(김신재), 조유아(방영자), 이광복(김영준), 이연주(박영숙&유계선), 민은경(나애심&윤심덕), 유태평양(신동훈&전창근), 조영규(R), 송나영(육상부 선수&촬영 스탭 외), 촤광균(손기정&촬영 스탭 외), 이재현(교장&촬영 스탭 외), 홍서영(사감&촬영 스탭 외), 채정원(육상부 선수&마을사람 외), 김기진(사회자&조명 스탭 외), 문경태(밀선 승객&마을사람 외), 박리안 안유진 안은혜(육상부 선수&기차 승객 외), 박차오름 송인준 (밀선 승객&마을사람 외), 전정아 박준명 박수윤 박소영 이태웅 이도윤(국립무용단)

​연주: 나실인(Cond), 국립국악관현악단

​스탭: 금배섭(안무), 박상봉(무대디자인), 정재진(영상디자인), 이동진(조명디자인), 김지연(의상디자인), 정윤정(소품디자인), 장경숙(분장디자인), 장현수(협력안무), 박주영 김하의(조연출)


이 작품 역시 지난 해 무대에 오르기로 되어 있다가 취소 후 재예매, 그리고 또 취소 후 재재예매를 통해 어렵게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두 자리 띄어앉기로 인해 오픈하는 좌석 수가 워낙 적어 예매 경쟁이 치열해 오픈하고 나서 바로 매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는 첫 공을 가려고 했으나 다른 분들과 일정을 맞춰 같이 가기로 해서 막공으로 바꾸게 됐는데, 뭐 막공의 캐스트가 더 좋은 것 같아 중간에 취소되지만 않으면 괜찮겠다 싶었다. 이 작품은 국립극장 산하단체인 국립창극단을 중심으로 국립무용단과 국립관현악단의 세 단체가 협업으로 꾸미는 9년만의 무대라 어떤 작품이 나올지 많은 기대가 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인 박남옥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윤심덕이나 나혜석 등, 가부장적 사회상이 만연하던 시대를 거부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 선구자들의 이야기가 여러 작품들에서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작품도 그러한 사회적 트랜드에 편승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박남옥이라는, 윤심덕이나 나혜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예술인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차별성이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박남옥은 일제시대 경북여학교 시절 전조선종합경기대회에서 투포환으로 3연속 한국신기록을 세운 이력이 있는 인물로 일본우에노미술학교에 원서를 넣어 합격했으나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 외에는 진학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학교 방침에 따라 유학을 포기하고 이화여전 가정과에 입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다음 해 자퇴했다고 한다. 자퇴 후 대구로 내려가 기자 생활을 하며 영화평을 썼다고 한다. 해방 후 서울로 올라와 영화 편집을 배웠고 스크립터로 영화판에 뛰어든 이후 6·25전쟁이 일어나자 국방부 촬영대에 입대하여 뉴스촬영반에서 활동했다. 전쟁이 끝난 1954년, 남편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촬영을 진두지휘하면서 <미망인>이라는 작품을 제작하지만 제작비가 부족해 자신이 직접 스탭들의 밥을 지어 먹이면서 촬영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던 당대 스타배우인 김신재를 캐스팅하고자 했으나 남편이 월북하고 두 아들을 6·25전쟁으로 잃은 김신재가 이를 거절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1955년 개봉하지만 평판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 3일만에 막을 내렸다고 한다. 이후 지방 공연에서 사기를 당하는 한편 건강도 나빠지는 바람에 재기하지 못하고 이후 출판계 쪽으로 나가 영화잡지 등을 운영하였고 1992년 미국 LA에 정착했고 2017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2008년 박남옥영화상이 제정되어 그녀를 기리고 있는데 두 번만 시행되고는 기금 부족으로 현재는 운영되지 않는 듯하다.
휴일이고 오랜만의 국립극장 나들이라 일찍 집을 나섰다. 공연 1시간 전에 국립극장에 도착했더니 그동안 해오름극장을 가리고 있던 가림막이 모두 철거되어 있어 해오름극장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일단 외관상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데, 2018년 10월엔가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오는 6월에 공연 일정이 잡혀 있는 것으로 보아 무려 2년반이 넘는 기간 동안 수리를 하는 셈인데 어떻게 변해있을지 기대가 된다. 해오름극장 옆으로 오후 카페로 가서 올해 처음 만나는 나무점, 사자개, 투제이님과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다 달오름극장으로 갔다.

[사진=봄뫼] 가림막이 걷힌 해오름극장

티켓을 받고 초연작인지라 프로그램북을 한 권 샀는데, 사고 보니 대본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다. 다만 인물관계도가 상세하게 나와 있어서 그거 하나는 공연 전에 읽어보니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 공연을 보기 전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사이트에서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을 미리 보았는데, 공연이 끝나고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확실히 미리 영화를 본 것이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날 객석은 두 자리 띄어앉기를 해서 매진임에도 관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내 앞에는 관객이 없어서 시야가 가리지 않아서 좋았다. 무대에는 제목이 마치 전용 안경을 쓰지 않고 3D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중으로 투사되어 있었는데 샤막이 이중으로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샤막이 내려와 가려진 상단 무대 아래에는 계단으로 연결된 하단 무대가 있었는데, 하단 무대 중앙에는 섬처럼 돌출무대가 하나 올라와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진=봄뫼] 내 자리에서 본 무대


이 작품은 박남옥이 제작한 <미망인>이라는 영화의 내용과 박남옥의 일생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연출되었는데, 말하자면 일종의 액자식 구성으로, 극의 중간에 한꺼번에 영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극이 진행되면서 중간중간 액자가 나타나는 병렬식으로 구성되었다. 박남옥 자신의 이야기는 감독을 잘 알아야 영화를 잘 찍을 수 있다며 일상생활에까지 박남옥을 따라다니던 촬영기사 김영준에게 박남옥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표현했다. 그런가 하면 박남옥이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을 타고 가다가 물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당시 밀항선에서 연인 김우진과 함께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 윤심덕을 등장시켜 박남옥과의 연관성을 부각시키기도 하였다.

무대가 두 개의 단으로 나뉘어 있어 연출이 상당히 입체적으로 느껴졌는데, 영화 속 장면은 대부분 하단 무대에서 진행된 반면, 박남옥의 삶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상단 무대에서 진행되었다. 아마 관객들에게 액자 밖의 이야기와 액자 속의 이야기를 분명하게 구분해 주려는 연출가의 의도였던 것 같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밀항선 장면과 완행열차 장면이었다. 밀항 장면에서는 무대 뒤 파도치는 영상을 배경으로 스테이지 리프트를 하강시키고 상승시킴으로써 배가 파도에 흔들리는 장면을 연출했고, 완행열차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넘버를 부르면서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들썩거려줌으로써 완행열차의 흔들리는 모습을 연출해 주었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영상의 활용이 돋보였는데, 1950년대 당시의 자료 사진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무대 장치에서는 러내지 못하는 당시의 분위기를 나타내 주었고, 특히 박남옥이 아기를 업고 있는 유명한 사진은 극중에서 촬영기사 김영준이 박남옥이 아기를 업고 서 있는 장면을 찍는 모습에 이어 카메라 셔터음과 함께 무대 샤막에 투영했는데 기억에 남았다. 처음 암전 뒤 상단 무대에 국립무용단원들이 먼저 나와서 춤을 추는데, 그 내용이 마치 오페라의 서곡처럼 이 작품의 내용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들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후 국립무용단원들은 두 번을 더 등장하게 되는데, 작품과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이들의 등장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다소 아쉬웠다.


[사진=봄뫼] 전 출연진. 무대 위는 국립무용단원들.

이 작품에서 가장 새로웠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노래였다. 아마 국립극장 측에서도 국립창극단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웠으면서도 클래식음악 작곡을 하는 나실인 작곡가에게 의뢰를 한 것이 가장 고민스러운 지점이었으면서도 가장 도전적인 측면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과연 이 작품의 성격이 창극이나 아니면 뮤지컬이냐 하는 문제였을 것이다. 아니, 장르는 어떤 것이든 크게 중요치 않은 것이고 기실 중요한 것은 국립창극단원들이 나실인 작곡가의 넘버를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 문제점이 이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국악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일부러 국악적 재료를 더 찾으려 하지는 않았지만 내재적으로 음악 안에 흐르는 장단 사이 선율을 굴곡 등을 통해 한국적인 요소가 들어간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작곡가의 말처럼 국악적 장단이 많이 반영된 일부 넘버에서는 창극과 같은 발성의 노래가 나왔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노래에서는 뮤지컬 배우들과 유사한 발성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발성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은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대단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실제 이날 공연에서는 이미 뮤지컬 무대를 몇 번 경험해 본 바 있는 주인공 박남옥 역의 이소연 배우만이 모든 넘버를 충실히 소화해 낼 수 있었을 뿐, 다른 배우들에게는 상당이 버거웠던 듯 했고 창으로 부르는 넘버와 뮤지컬식으로 부르는 넘버가 혼재되다 보니 좀 어색하게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창으로 부를 수 있는 넘버가 없었던 김준수 배우의 경우에는 공연 내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후반부에서는 좀 나았으나 초반부에서의 넘버는 음정이 다소 불안하게 들릴 정도였다. 반면에 창은 아니었으나 멜로디나 음역대가 소화하기에 비교적 수월해 보이는 넘버가 있었던 김신재역의 김지숙이나 나애심 역의 민은경 배우의 경우에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일부 창이 있었던 이민자 역의 김미진, 방영자 역의 조유아 배우의 경우에는 다소 편차가 있었으나 열창을 보여준 좋은 넘버들이 좀 있었다.

[사진=봄뫼] 맨 앞에 이소연(박남옥), 둘째줄 왼쪽부터 김미진(이민자), 조유아(방영자), 이광복(김영준), 셋째줄 안예림(주), 김지숙(김신재), 넷째줄 이연주(박영숙), 유태평양(신동훈), 민은경(나애심), 김준수(이택균)


나실인 작곡가가 직접 지휘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영사막처럼 사용된 두 번째 샤막 뒤에서 연주한 것은 공연 전 다정한마음님의 블로그를 보고 알았는데, 상당히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아무래도 클래식 작곡가이다 보니 국악관현악으로 충분히 표현하기 어려운 음들을 위해 피아노와 기타, 콘트라바스와 드럼 등이 동원되었는데, 국악관현악과의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사진=봄뫼] 나실인 지휘자와 국립국악관현악단

전체적으로 귀에 잘 들어오는 넘버들도 많았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박남옥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을 동원해 표현한 방법이 참신하고 좋았으나, 배우들의 넘버 소화력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또 무용단이 작품 속에 더 잘 녹아들어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새로운 시도였고, 초연치고는 만족스러운 무대였다.

[사진=봄뫼] 공연이 끝난 뒤의 무대

작성자 봄뫼 buon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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